셋째 날
어찌되었든 집을 떠나면 깊은 잠을 못자는 나는 또 일찍 일어나서 살글살
금 나갈 준비를 하고 식당으로 내려간다. 룸메이트 아녜스자매를 기다리며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데 로사 자매님과 토마스 형제님이 내려오신다. 벌써
준비 다 끝내고 내려오신다. 반갑다. 어제 많이 지치셨을 텐데 씩씩하게 보
이신다. 내게 항상 사랑을 주시는 너무나 고마운 분들이시다. 옆 테이블에
앉으신다. 아녜스자매가 내려와 마주 앉는다. 언제나처럼 다소곳하다.
출발이다. 낮에는 더워도 아침에는 쌀쌀하다. 멕시코 시티는 하와이와 비
슷한 위도 상에 있는 도시인데 고원지대라 기온이 사철 똑같다고 한다. 아
침에는 47도 정도, 낮에는 70도 정도다. 오늘은 버스로 세 시간을 이동해
고원에서도 높은 산을 넘어 유네스코 지정 도시라는 타스코로 간다. 시내를
빠져나갈 때까지 보이는 산자락마다 빽빽이 들어찬 서민주택들의 모습이
60년대 우리나라 달동네처럼 보인다. 동네 길들이 차가 올라가다가는 저절
로 뒤로 밀릴듯 가파르게 보인다. 한참을 그렇게 구경하며 달리다 버스는
도시를 벗어나 산으로 올라간다. 묵주기도를 끝내고 내다보니 산에 있는
나무들이 우리가 사는 곳보다는 키가 작아보인다. 중간에 화장실이 있는
주유소에서 잠깐 내려 다리를 펴는데 햇볕이 너무 좋고 푸른 하늘에 습기가
전혀 없는 것이 느껴진다. 아주 조용한 산동네다. 심호흡을 한다. 내 마음이
청명해진다.
키가 큰 팜트리 아래서 사진들을 찍고 다시 버스에 올라 타스코로 향한다.
마을로 들어가기 전 도시 전체를 볼 수 있는 언덕에서 산자락에 빽빽이 자
리 잡은 타스코를 멀리 내려다 보니 집도 많지만 성당이 정말 많다. 우리 전
용 사진사 알벨또 형제의 주문 대로 단체 사진을 찍고 버스에 오른다. 마을
입구에 들어와 마을을 오르는 마을버스로 갈아탄다. 길이 가파르고 좁아
이 버스를 타야만 한다. 15인 승 정도의 폭이 좁은 마을버스 두 대에 주민
들과 함께 타고 언덕을 오른다. 앉은 자리에서 뒤로 밀리는 것 같다. 재밌
다.수학여행온 학생들처럼토니와함께우리자매들은누군가한마디하
면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색이 변하지 않는 은을 생산하는 은광이 있었다는 타스코의 쏘깔로 광장에
도착하니 정신없이 복잡하다. 바닥과 길은 돌로 포장되어 있다. 넓지 않은
광장에 차도 많고 사람도 많다. 땅땅하고 우리와는 체형이 다른 조그마한
사람들이 모두들 바쁘게 움직인다. 가이드를 따라 광장에 있는 산타 프리스
카 성당으로 들어간다. 1700년대 중반에 은광을 하는 부호가 건설했다는
성당이다. 지금까지 보고 온 성당들이 그랬듯이 내 드센 기를 가라앉힌다.
실내 장식이 아기자기하면서 휘황찬란하다. 교우 율리아나 자매를 모델로
세워놓고 사진을 찍으니 양쪽 벽면 장식과 이중으로 보이는 천장 아치가
마치 결혼을 준비하는 신부의 화관처럼 모델을 감싼다. 아름답다. 토마스형
제님과로사자매님아녜스와안나자매를모델로사진을찍고, 중세의느
낌이 나는 쇠창살 창문 사이로 마을을 내려다보며 안쪽으로 들어가니 좋은
미술관 처럼 커다란 성화가 몇 점 걸려 있다. 우리 자매님들을 성화와 함께
성화처럼 카메라에 담아본다.
밖으로 나오니 온 동네가 부산스럽다. 많은 골목길은 가파르고 좁고 차와
사람은 이리저리 밀리고 있다. 올려다보는 골목 끝마다 산자락에 집들이 촘
촘히 박혀 있는데 건조한 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신 햇빛과 그 풍경이 낭만적
이고 정겹다. 골목을 올라가다 우리는 은제품을 파는 상점에 들렸다가 또
가파른 골목을 올라가 점심 식사를 할 식당에 도착해서, 다시 좁은 계단을
한참 올라가니갑자기시야가확트이고온도시가내려다보인다.노천스
카이라운지다. 우리나라 포장마차 같은 식탁이 몇 개 놓여 있고 파라솔이
펼쳐져 있다. 조금 전에 둘러본 산타 프리스카 성당 종탑이 바로 눈 앞에 보
인다. 멋지다. 붉은 포도주 같은 빛갈의 카마리아 쥬스와 구운 옥수수 전병
에 과카모리를 듬뿍 바르고 소고기를 싸서 먹는 또르띠야 라는 전통 음식이
우리 모두의 입에 잘 맞는 것 같다. 지중해의 태양과 풍광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하며푸른하늘과저아래수많은성당들을내려다본다. 모두들감탄
하며 서로서로 사진 찍어주기에 바쁘다.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모두의 마
음속까지 간지럽히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성당에서 데면데면 하던
사이가 아니라 모두 하나가 된 것처럼 가까와져 있다. 서로서로 부축하고
배려 하면서. 잠시 자유 관광을 끝내고 광장 한 켠에 늘어앉은 마을사람들
틈에 끼어 앉아 사진을 찍는다. 데킬라 ~~
10분 정도 걸어 우리는 미사가 예약되어 있는 소성당으로 올라간다. 돌로
된 외벽과 강한 햇빛을 등진 높지 않은 십자가가 중세의 수도원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내부도 지금까지 보던 성당과 달리 흰색 바탕에 푸른색 선이
있어 화려하지 않고 조촐하면서 단아한 성당 제대에는 백합이 여러 화병에
꽃혀 있다. 우리 성당도 이랬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해본다. 성당 앞자리
에 앉아 미사 시작을 기다리는데 어제 저녁 살짝 성질을 드러낸 일이 생각
난다. 도저히 그냥은 영성체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고백성사를 청한다. 뒤로
돌아가 잠깐 고해성사를 하고 나오니 기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입당송으로
어제 저녁에 골라 놓은 19번, ‘주 예수 우리의 희망 우리의 행복’을 안나 자
매와 조용히 부르니 우리 성가가 높은 천정까지 울려퍼진다. 우리는 모두
경건하고 벅찬 마음이 된다. 미사 중 독서대에서 강론하시는 신부님이 정말
편안하고 환하고 거룩하게 보이신다. 사재를 모두 털어 성당을 짓고 또 두
아들은 사제가 되었다는 부호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주시는데 오면서 버스
안에서도 들었던 그 말씀이 이 순간 가슴이 찡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두 아
들까지사제가되었다는것은진정모든것을내어준것이아니겠는가. 모
두들 눈시울이 촉촉해졌던 것 같다. 나는 퇴장 성가로 200번 ‘열절하신 주
의 사랑’을 부르다 ‘창검에 찔린 상처’에서 울컥한다. 옆에서 같이 부르던 안
나 자매가 ‘그 크신 사랑을…’ 노래하며 내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 준다.
마을버스를 타고 내리고, 밴을 타고 졸면서 웃으면서 서서히 어둠이 내리
는 길을 3시간을 달려 식당에 도착한다. 아르헨티나식 스테이크 식당이다.
내부가 독특하다. 천정이 높고 넓어 실내이면서 건물 밖 같은 느낌을 준다.
특별히 토마스 형제님이 내시는 와인이 돌아가고 한 모금씩 하고 있으니 셀
러드와 커도 너무 큰 스테이크가 나온다. 배불리 먹고 기분 좋게 대화하고
많이 웃고 멕시코시티의 밤거리로 나온다. 이젠 모두 하나다. 호텔 가까운
곳이라 한 10분 걸어가는데 누군가 다가와 내 팔을 부축해준다. 갑자기 내
가사랑을너무많이받고있다는생각이든다. 나는사랑을참많이받은
사람이라고 혼잣말처럼 얘기한다. 나는 늘 사랑을 받기만 하고 내어주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핑 돈다. 호텔에 도착해
씻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가이드 형제와 악수를 하고 잠시 앉았다 방으로 돌
아와 내일 마지막 미사에 부를 성가를 고르고 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