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날
호텔에서의 마지막 아침 식사를 하고 올라와 어제밤 싸다 만 가방을 꾸려
로비로 내려간다. 모두들 식사를 마치고 내려와 있다. 첫날과 둘째 날 갔던
대성전 광장에 있는 우물의 소성당에 9시 미사가 예약되어 있다. 과달루페
성모님이 4번째 발현하신 장소인 이 성당문 안에는 커다란 우물이 있다. 이
우물에는유황성분이많아성모님발현하시던해에이우물의물로 전염
병이 치료되었다는 기적이 있는 곳이다. 미사를 드리며 ‘내가 곧 나으리이
다‘ 기도한다.성가271번 ‘기쁠때나슬픈때나…인자하신어머니’를
부르며 안타까운 마음에 몇 번씩 발현하셔서 기적을 보여주신 과달루페 성
모님의 사랑을 되새겨본다.
마지막으로 대성당으로 들어가는데 땅딸막한 젊은 남자가 성당 입구에서
갓난 아이를 안고 무릎을 꿇는다. 그 모습을 보며 괜히 코끝이 찌잉한다. 나
도 따라 잠깐 무릎을 꿇는다. 아쉬운 마음으로 대성당을 둘러보고 뒷문으로
나와 우리에게 자주 화장실을 제공했던 성물가게로 들어간다. 우리 자매들
이 성물들을 고르고 있다. 나도 조그만 과달루페 마리아상을 골라 넣고 버
스가오기를기다리며토마스,알벨또형제님과 가게앞벤치에앉아있으
니묵주를십여개씩소매에걸고팔러다니는사람들도많고 지나다가그
묵주를 사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버스로 멕시코 시티의 소갈로 광장 변두리쯤에 내려 성당을 찾아간
다. 지하 동굴로 들어가는 느낌이 나는 이 성당 주변과 입구는 상권이 형성
되어 있어 초와 다른 성물들을 파는 노점들이 이어진다. 성당 안으로 들어
가니 기도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가이드의 안내로 만나기 어렵다는 성수
축성을 받고 초를 하나씩 사서 제대 아래에 놓고 잠시 장궤하고 기도를 드
린 후 밖으로 나와 조금 걸어 주교좌 성당으로 들어가니 미사 중이다. 그곳
도 역시 제대 앞면이 금으로 장식되어 있고, 그 조금 앞에 서 있는 검고 가
는 십자가 위에 검은 예수님이 달려 계신다. 그 예수님 피부를 닮은 참으로
많은 신자들이 미사 참례 중이다. 그들의 모습이 굉장히 진지하고 경건하
다. 여기도파이프올겐소리가웅장하다.그런데 나는왜마음한쪽이아
릴까?
성당도 신자도 정말 많은 도시다. 90% 이상이 천주교 신자인 국가의 수도
답다. 그 옆으로 정부청사와 대통령 궁이 보인다. 그 광장과 성당이 피라미
드 위에 건설 되어서 광장 아랫부분의 피라미드를 볼 수 있게 바닥 몇 군데
가 투명유리로되어있다.뱀을밟고계신과달루페성모님성화가생각난
다. 그들을 산제물의 희생으로부터 구해주신 그들의 어머니, 자비의 어머
니, 과달루페 성모님. 언젠가 티브이에서 멕시코 사람들이 마리아 상을 모
시고 축제처럼 행진하는 것을 좀 의아해 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좀 이해가
된다.
300년이라는 시간은 거의 10 대가 넘는다. 그 긴 시간 동안 스페인에 지배
당한 멕시코의 많은 부분들이 스페인화 되어 있다. 아니 제2의 스페인이라
고 해도 될 거 같다. 우리가 보고 감탄한 그 많은 화려한 성당과 스페인식
거리가 어쩌면 멕시코의 아픔은 아닐까? 아니면 물집 위에 물집이 생겨
단단해진 굳은살일지도 모르겠다. 돌로 포장되고 다져진 그곳의 길처럼…
순례를 마치고 우리는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에는 또 웬 사람이 이렇게 많
을까. 흡사 시장통 같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북적인다. 우리는 커다란 햄버
거를 맛있게 먹고 가이드와 헤어져 탑승수속을 밟는다. 휴스턴을 거쳐 샬럿
공항에 도착하니 금요일 밤 11시 45분이다. 모두들 아쉬운 마음들을 다독
이며 헤어진다.
순례에서 돌아와 성당에서 미사 중 신부님께서 하신 강론 말씀 중에 참는
것이 죽는 것이지만 죽기만 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생활 중에서 부활을 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그 말씀이 내게 하시는 말씀 같았다. 나는 사실 여태 죽지
도 못하면서 죽으려고만 했던 것 같았으니. 미사 마친 후 그 동안 미뤄왔던
면담을 하면서 신부님께 성지순례 후에 신부님 강론이 달라지신 것 같다고
했더니 전에도 똑같았다고 하시면서 듣는 스콜라스티카씨가 달라진 것 아
닌가요 하셨다. 내가 달라졌나, 의아해하면서 사무실을 나왔다. 하긴 행동
은 안 변했어도 우선 강론 받아들이는 자세부터 미미하지만 변화했다면 그
것이 나에겐 이번 순례의 수확이겠고, 평소 나의 좋지 않은 습관과 내가 받
고있는사랑과나를사랑해주는분들,또 나의사랑없음에대해서생각해
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웃음과 배려와 염려와 양보와, 나눔과 부축
으로 많은 사랑을 나누며 우리 너무나 좋은 성당 교우들과 정말로 모두 똑
같이 젊고 신나고 행복하고 찐한 순례 여행이었다.
찬미 예수님! 찬미 과달루페 성모님!
성지에 대한 궁금증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믿음이 약해서인지 지금까지 나
는 성지 순례를 하고 싶어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어떻게 이번
순례에 따라 나서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서로를 인정해주며 아껴주는 언
니같은 친구와 여행을 한 번 같이 해보고 싶어 성지 순례라기 보다는 관광
여행을 가는 기분으로 이번 순례에 따라나섰다. 가기 전 구글 지도에서 과
달루페가 어디에 있는 곳일까 찾아보니 나오질 않았다. 그만큼 무지하게 나
는 이 여행에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동행하게 되었고 줄레줄레 따라다녔다.
갑자기 메모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기억만으로 이 글을 쓰다보니 성당의 순
서가조금바뀌었는지도모르겠다.이글을쓰며그때의 기억과그순간의
감동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순례를 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