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7일
허례허식이 없는 삶
VIANA → NAVARRETE 21KM
보통 아침 8시까지는 알베르게를 나가야 하는데 어제 크레덴시알에 도장 찍어준 사람이 와서
문 단속만 잘하고 나가라고 하고 가 버렸다. 우리는 한 시간가량 기다렸다가 9시가 되어서야 문을
여는 상점에 가서 스테이크용 고기와 양파를 사다 구워 정말 맛있게 먹었다. 먹는 것이
힘이기에….
어제 너무 피곤해 잘 살피지 않았던 비아나 작은 마을을 둘러보았다. 아름다운 산타 마리아
성당이 마을 중심에 있었고, 가운데 물 골이 있는 돌길 양쪽으로 2~3층으로 된 육중한 중세풍의
돌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1층은 유럽풍의 상점들이 들어 있는데 나에게는 모두가 유적지로
보였다. 순례길에 유적지가 1,800군데가 있다는데 10세기 이후 눈부시게 찬란했던 스페인
문화를 보여주는 예술과 건축물들이다.
마을을 벗어나 아스팔트길, 공장지대, 울창한 숲 속길, 고속도로를 몇 번 건너며 노란 화살표를
놓쳐 이리저리 헤매다가 우여곡절 끝에 로그로뇨 (Logrono) 사인을 발견했다. 10km 정도를 네
시간이나 걸린 셈이다. 얼마 후 카미노에서 제일 큰 에브로 (Ebro) 강에 일곱 개의 아치가 있는
다리를 건너 시가지로 들어섰다. 시골길만 걷다가 중세 시대에 건설된 큰 도시로 들어서니
조용한 시골에서 살다가 도시에 온 여인네들처럼 어리둥절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산업화된 시가지와 흥미로운 건축물과 조각상들이 즐비했다. 로그로뇨는 스페인에서 가장 작은
자치주인 라 리오하 주의 시작이며 주의 주도이다.
우리는 먼저 신발가게를 찾았다. 여행자 안내소에서 받은 주소로 가게를 찾아가 드디어 언니는
신고 온 등산화는 버리고 149유로 주고 새 등산화로 바꿔 신었다. 새 신발을 신은 언니는 고생
끝인 줄 알았는데 일단 성이 난 발을 달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발이 훨씬 편한
것 같다며 좋아했다. 나도 지팡이를 다시 구입했다.
우리의 사고와 너무나 다른 이곳 사람들이었다. 세련된 주인 청년은 시에스타라며 손님이 또
올까 겁이 나는지 황급히 문을 닫으려고우리보다먼저밖으로나가한손엔열쇠를들고다른한
손은 문을 열고 서서 마지막 손님인 우리가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렸다. 도시 사람들도 별로 큰
욕심이 없는것같았다.욕심이없으니까경쟁할일도없을테고,남의도움도필요없으니영어의
필요성도 못 느낄 것 같았다.
로그로뇨의 라우엘 골목은 양송이버섯 요리인 타파스와 토속주인 로제 와인으로 유명하다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번화한 시내 끝자락에는 벤치도 있건만 공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빵과
오렌지와 공원에 설치된 수돗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순례의 길에는 마을 곳곳마다 물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순례자들의 갈증을 달래 주고 있다.) 허례허식이 없는 삶이란 이렇게
편안한 것일까? 진정한 자유란 이런 것일까? 화장기도 전혀 없는 얼굴, 가장 기본적인 간편한
옷차림에 어떤 격식도 필요하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최고의 편안함이었다.
자세를 재정비하고 저수지에 둘러싸인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로그로뇨 도시를 빠져 나왔다.
얼마를 걸은 후 나타나는 차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철조망에는 순례자들이
나뭇가지로 만들어 꽂아 논 엄청난 수의 나무 십자가가 달려있었다.
다시 시골 들판길로 이어진 길을 걸어갔다. 언니와 나는 각자 말없이 걷기만 했다. 집을 떠나올
때 아무리 힘이 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기로 나 스스로에게 한 약속 때문일까,
신음소리가 나올까 봐 입을 굳게 다물고 걷기만 했다. 따각따각 지팡이 소리를 들으며 혼자
상념에 빠졌다. 나는 왜 이토록 이곳에 오고 싶어 했을까? 다른 순례자들은 지금쯤 카미노를 걷는
이유를 찾았을까?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엄마가 지금 나를 보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평원이 끝나고 도자기 공장과 공장지대를 지나 나바레타 (Navarrete) 에 들어서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였다. 마을 입구의 넓은 터에는 순례자 병원이었던 건물이 다 무너지고 벽체만 남아
있었다. 저 건물에도 전성기가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 한 귀퉁이가 뭉클했다. 여름에는
순례자를 환영하는 음악회가 열린다는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마당에는 순례자의 조각상이 서
있었다. 비수기라 문이 닫혀 있었다. 언니와 나는 어두워진 거리에서 조금씩 발걸음을 옮겨 가며
각자 다른 방향에서 알베르게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너무 멀리 가는 바람에 서로를 잃어버렸다가
어렵게 다시 만나 사설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낯익은 얼굴들은 벌써 짐들을 풀고 샤워를 끝낸 것
같았다. 우리는 도장만 받은 다음 배낭을 벗어 놓고 저녁을 먹으러 마을로 내려갔다.
식당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동네를 돌아보았다. 이 마을은 유일하게 고대
도기 터가 남아있는 도공의 마을이라 그런지 아름다운 문장이 새겨져 있는 집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는 불빛이 제일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오늘의 요리 ‘메뉴 델 디아 (Menu Del Dia,
Menu of Day)’ 를 시켰다. 세 코스가 나오는데 와인과 물이 포함된 가격이 12유로였다. 와인은 ‘All
you can drink!’이다. 와인을 한 병 시켜 언니와 마시고 있는데 알베르게와 길에서 가끔 만났던
스위스인 전직 교수와 독일 여인이 연인처럼 들어와 옆자리에 앉으며 우리를 보고 반가워했다.
이어 차정임과 오한나씨가 들어와 합석했다. 선량하게 생긴 웨이터는 부탁도 안 했는데 계속 새
와인 병을 가지고 왔다. 디저트로 이곳의 특산물인 초리소 케이크가 나왔다. 우리 넷은 그날 저녁
와인을 꽤 많이 마셨다. 밤 10시까지는 알베르게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나왔다.
나는 아래층 침대로 언니는 위층 침대로 올라갔다. 많이 마신 와인 때문에 속이울렁거려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언니는 밤새도록 신음소리를 내며 뒤척거렸다. 나는 꼼짝 않고 누워 그
신음소리와 쉬지 않고 뒤척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