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분들 이야기 제12편 김진숙(로사) 자매님 산티아고 가는길

20111119
깊은 신앙심은

NAJERA SANTO DOMINGO DE LA CALZADA 22KM

잠은 잘 못 잤지만 아침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밤에 빨아 보송보송하게 마른 옷을 입으니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 언니도 조금 회복이 된 것 같다고 한다.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서 아침을
먹고 빈 병에 물을 얻어 나오니
9시쯤 되었다.

마을을 빠져 나와 양 옆으로 펼쳐진 포도밭 길을 걷기 시작했다. 땅의 빛깔이점차로붉은색을
띄웠다
. 석회암과 흙이나 모래가 흘러내려 낮은 지역에 쌓인 토양인, 충적토가 많은 붉은색의
땅은 잡초를 억제하는 동시에 포도 나무의 성장을 촉진시켜 준다고 한다
. 라오하 주는
스페인에서 가장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며 오래된 떡갈나무 통에서 숙성된 적 포도주는 세계
최고의 맛을 낸다
.

두 시간쯤 걸어 중세 아랍인들의 마을이었다는 아조푸라 (Azofra) 로 들어섰다. 바에 들어가
커피와 간단한 스낵을 먹었다
. 테이블이 몇 개 안 되는 이 바는 고상한 실내 장식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 주인 아저씨가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구노의 아베마리아를 비롯하여
귀에 익은 음악들이었다
. 음악은 세계 공통어라더니 귀에 익은 음악만으로도 그 주인 아저씨가
낯설지 않았다
.

오늘은 오후 4시가 조금지나서카미노성인의이름을그대로사용하고있는산토도밍고델라
칼사다
(Santo Domingo de la Calzada) 로 들어섰다. 시에스타라 상점들은 물론 문이 닫혀 있었다.
도시로 알고 있는데 사람들의 그림자조차 안 보이는 거리에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 옛날 14세기
유럽 전역에 전염병이 유행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
스산한 날씨와 더불어 사람들이 모두 떠난 유령 도시 같았다. 20여 분 동안 한 사람도 못 보고
알베르게를 찾아가니 의외로 영어를 잘하는 직원이 친절하게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며 호텔
위치를 알려주었다
.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닭 두 마리를 기르고 있는 곳으로 유명한 산토 도밍고
성당
(Cadedral Santo Domingo de la Calzada) 으로 향했다.

12세기 무렵, 어느 청년이 부모와 순례를 하던 중에 청년을 짝사랑하던 이곳 하녀가 질투와
복수심으로 청년을 모함해 절도죄를 뒤집어 씌워 청년은 교수형을 당하였다
. 그러나 신앙심이
강한 부모님 덕분에 교수형 당한 아들이교수대위에다시살아나있었다
.이를본부모가관가에
가서 말하자
당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면 내식탁위에있는구운닭두마리도살아나겠군!”하고
우두머리가 코웃음을 치자 식탁 위에 있던 구운 닭 두 마리가 살아나 날개를 푸드덕거렸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었다
.

좀 황당한 전설이지만 부모의 간절한 바람과 신앙심이 기적을 일으켰듯이 깊은 신앙심은
결국은 기적까지도 일으킬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으리라 생각된다
. 몇 백 년을 이어오고 있는 이
전설을 근거로 지금도 성당 벽 한쪽에 닭장을 만들어 닭 두 마리를 정성스럽게 키우고 있다
.
성당의 닭은 3주마다 교체해 준다고 했다. 순례 중 닭 울음 소리를 들으면 큰 행운이 온다고
하는데 우리는 닭 울음소리는 듣지 못했다
.

마침 문을 연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니 각국의 순례자들이 군데군데 모여 시끌벅적하다. 우리는
한쪽 테이블에 앉아 생선과 감자 요리로 오랜만에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 와인은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었지만 한 잔씩만 마셨다
. 토요일 저녁 미사를 드려야 했으므로.

저녁 8시 미사에 참석했다. 낮에는 말그대로쥐죽은듯고요하고한사람도안보이더니그큰
성당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들어왔다
. 역시 천주교의 나라구나 새삼스러워졌다.
나이 드신 신부님과 젊은 신부님이 집전하시는 매우 엄숙하고 경건한 미사였다. 30여 명의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들로 구성된 성가대가 빨간 촛불을 하나씩 들고 성당 뒤 성가대로 들어가 줄을
맞추어 서더니 맑고 고운 목소리로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 성가가 마음을 이렇게
감동시키는구나
! 성체를 받아 모시는 순간 가슴이 벅찼다. 불현듯 우리 성당 교우들 모습이
떠올라 모두를 생각하며 기도를 드렸다
. 걸으면서 지나치는 성당마다 문이 닫혀 있어 그동안
서운했었는데 이렇게 몇백 년을 내려온 웅장하고 더 없이 멋진 성당에서 미사를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

미사 후에는 청소년 성가대의 음악회가 이어졌다. 율동과 함께 악보도 없이 12곡을 쉬지 않고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에 흠뻑 빠져 우리는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 참으로 귀엽고 재미있는
음악회였다
. 우연히 덤으로 얻은 행운의 시간이었다. 많은 촛불을 밝히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마을의 첫인상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저녁 시간이었다. 정취 있는 밤의 거리에서 주말을 즐기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오늘의 보금자리를 향하여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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