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분들 이야기 제15 편 김진숙(로사) 자매님 산티아고 가는길

20121011
제대로 가고 있네

HONTANAS ITERO DE LA VEGA 17KM

마르지 않은 옷들을 챙겨 넣어터질것같이팽팽해진배낭을메고테레사,마리아와함께8시쯤
제일 늦게 알베르게를 나왔다
. 따뜻한 마음씨와 감성을 지닌 60대 초반의 미혼인 테레사는 현직

간호원으로 레온까지만 걷고 조카가 있는 독일을 거쳐 아일랜드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쾌활하고 씩씩한 50대 중반인 마리아도 역시 동생이 있는 레온까지만 걷는다고 했다.

미동도 없는 작고 예쁜 마을을 10분쯤 걸어 나와 노란 화살표가 그려진 아스팔트길로 나왔다.
앞장서 가던 마리아는 짧은 길로 가자고 우리를 따라오라며 밭두렁 같은 곳으로 들어섰다.
밤에도 비가 많이 왔는지 잔돌들과 진흙으로 범벅이 된 황무지길이었다. 우리는 신발이 푹푹
빠지는 진창길을 한참 헤매다가 다른 순례자들이 보이는 아스팔트길로 다시 나왔다
. 잘못
인도했다며 미안해 하는 마리아에게 우리는 카미노의 추억을 하나 더 보태줘 오히려 고맙다며
진흙투성이로 엉망이 된 신발들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

오늘은 산 니콜라스 데 푸엔테 피때로 (San Nicolas de Puente Fitero) 까지 갈 예정이다. 19.5km
거리다. 두 시간쯤 지나 종탑만 높다랗게 서 있는 폐허가 된 수도원과 아치형으로 된 성곽
유적지가 있는 산 안톤
(San Anton) 을 지나 카스트로헤리즈 (Castrojeriz) 에 들어섰다. 파울로
코엘료가 레온시와 더불어
, 사랑했다는 마을이었다.

(1000여 년 동안 순례자들의 길이기만 했던 카미노를 브라질 사람 파울로가 1986년에 이 길을 걸은 후
순례자란 책을 출판했다. 그에 의해 사색의 길, 자기 성찰의 길로 널리 알려졌다.)

9~10세기에 이슬람을 몰아내기 위한 레콩키스타들이 전투를 벌였던 중요한 장소이다.
11
세기에는 왕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성당이 여러 개 있었을 정도로 종교적으로 번성했던 곳이다.
마을 입구 몇 km 전부터 보이는 정상의 성채는 로마인들이 쌓았던 성벽 위에 더 높이 성을
올려놓은 스페인의 중요한 중세 유적 중 하나이다
. 이 마을의 융성했던 그당시 역사를 한층 더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 너무 높이 있어 올라가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함께 도착한 테레사와 1유로를 받는 산또 도밍고 교구 (Iglesia Parroquial de Santo Domingo)
성당을 둘러보았다. 곰팡이 냄새와 여기저기 먼지가 앉아있고 거미줄이 있는 것을 보아 미사를
드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 루벤스 그림과 여러 중세 그림들, 크고 작은 성인들의 조각과 제단
양쪽에 나무로 만든 거대한 장식 등으로 성당은 작은 박물관 같았다
. 입구에서 돈을 받던
할아버지가 계속 따라다니며 설명을 해 주었지만
…. 성당을 나온 우리는 마을의 예쁜 바에서
카페 콘 레체를 한 잔씩 마시고 성당을 개조해서 만든 산 니콜라스 알베르게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다시 자기 페이스대로 걷기로 하였다
. 성당 근처에는 주차한 차도 없었고 현대의 이기인
문명도 사람도 없었다
. 오롯이 옛날 그대로인 듯 육중한 돌집들만 늘어서 있는 중세 느낌의
거리를 잠시 걸어 보았다
.

다시 배낭의 무게와 허리의 통증을 느끼며 계속 펼쳐지는 밀밭길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 길가에
순례자들이 만들어 놓은 돌무덤 앞에 다다랐다
. 통증으로 허리를 굽힐 수가 없어 돌은 못 올려
놓고 순례를무사히마칠수있기를빌며잠시묵상을하였다
.아무리발걸음을옮겨도거센바람,
굽이굽이 가파른 고개, 황량한 들판, 변함없는 정경들이었다. 제대로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았다
. 발가락 아픔까지 합쳐 이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오르막길에서 추위에 대비해 가져온
두꺼운 스웨터를 아깝지만 돌 위에 내려놓아 배낭 무게를 조금 줄였다
. 허리를 구부정하게
양손을 뒤로 하여 배낭을 받쳐 들고 계속 언덕길로 올라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높은 산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았다
.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더 올라가기 힘들겠다고
느낄 즈음 모스텔라레스
(Alto de Mostelares) 정상에 다다랐다.

드넓은 들판 사이로 아름다운 황토 빛의 카스트로헤리즈 마을이 보였다. 누군가 한글로 인생은
고행
이라 써놓은 큰바윗돌에인디안복장을한세명의남자들이장총을들고기대어서있었다.
그들은 놀라 움찔하는 나에게 겁내지 말라는 듯이 얼른 초콜릿을 내밀며 자기들은 사냥꾼이라고
했다
. 스페인 북부에 살았던 바스크 족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며 사냥을 즐긴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 안심하고 잠시 앉아 황토 빛 마을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가까운 듯 보이면서도 신기루처럼 가까워지지 않는 성채를 향해 쉬지
않고 가보니 오늘 묵으려고 했던 장소인 성당의 문들이 모두 잠겨있었다
. 꼭 묵고 싶었던
장소인데
…. 이 알베르게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성당을 개조하여 자기들의 성인을 모시고 중세
시대의 전통을 지켜가며 직접 미사를 드리는 곳이다
. 또한 식사를 제공하기도 하고 순례자들에게
세족례를 거행하여 많은 순례자들이 묵고 싶어 하는 곳이기도 하다
.

낙담하며 다시 노란 화살표를 따라 11개의 아치가 있는 이떼로 (Itero) 돌다리를 건너 얼마쯤
가니 이떼로 데 라 베가
(Itero de La Vega) 가 나타났다. 스페인에서 11개의 숫자는 분쟁, 위험, 변화
등을 의미하는 숫자라는데 생각하며 길가에 있는 알베르게를 찾았다
. 마당에 있는 테이블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던 테레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 테레사도 꼭 묵고 싶었던 알베르게가 문을
닫아 서운하다고 했다
. 이 사설 알베르게는 1인당 10유로이며 한 방에 다섯 명이 묵는다. 방에
들어가니 아일랜드
, 멕시코, 호주 여자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바닥까지 내려간 체력을 샤워로
어느 정도 회복하고 때맞춰 걸어준 남편의 격려 전화에 기운을 내어 어둑어둑한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 한 중년 여인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신나는 콧노래를 하며 지나갔다. 이 낙후된 시골
동네에 살면서도 행복해 하는 마을 사람을 보니 삶은 마음먹기에 달렸고 자기 생활에 더 이상
욕심이 없으면 행복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생생하게 깨닫게 된다
.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한다고 자기보다 행복한 사람도 불행한 사람도 없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떠 올랐다
.

저녁은 오늘인연이된한방친구들과알베르게에딸린식당에서주인의수고를던다고닭고기
요리를 똑같이 주문했는데 너무 뻑뻑하고 맛이 없었다
. 모두들 조금씩 먹고 포크와 나이프를
놓아 버렸다
. 모든 것에는 기본이 있듯이 식성이 아닌 입맛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식당
한쪽의 테이블에서 몇 명의 노인들이 스페인의 국민 스포츠인 축구 경기 방송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오늘도 무사함에 감사하며 힘겨웠던 하루를 마무리하는 메모를 하고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

20121012
끝없는 길을 걸으며

ITERO DE LA VEGA POBLACION DE CAMPOS 27KM

730분쯤 부지런히 준비하여 몇 명의 젊은 순례자들과 같이 아직 어두운 길로 나섰다.
테레사는 어제 저녁 먹은 것이 탈이나잠을못잤다며근처의바에서조금쉬다떠나겠다고하여

그녀와는 포블라시온 (Poblacion) 알베르게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마을을 빠져 나와 얼마쯤을
지났는지
, 젊은 순례자들이 빠른 걸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드넓게 펼쳐진 황량한 밭 사이
자갈길로 비스듬히 길게 드리운 내 그림자와 단 둘이서만 걷고 있었다
.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의 맑은 날씨였다
. 신기하게 어제까지 끊어질 듯 아팠던 허리가 고맙게도 웬만큼
견딜만했다
. 똑같은 배낭의 무게도 오늘은 좀 가볍게 느껴졌다. 점점 적응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대로 편안한 길을 얼마쯤 지나 아치가 있는 다리를 건넜다.

경작지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를 따라 몇 시간을 걸어 보아디야 델 카미노 (Boadilla del Camino)
도착하였다
. 순례자들 사이에 유명한 곳이었다. 수영장이 딸린 파란 잔디에 카미노 상징들이
곳곳에 서 있는 알베르게의 바에 들렀다
. 바게트 빵에 고기, 치즈, 야채 등을 넣은 샌드위치
보까디요를 아침 겸 점심으로 먹고 바로 앞에 마침 문이 열려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으로
들어갔다
. 성당 벽에 걸린 승천하는 성모마리아그림을보고있던편안한차림의한국사람둘이
반갑게 다가왔다
. 부산에서 오신 부부로 요한 형제님과 베로니카 자매님은 여러 교통편을
이용하여 가톨릭 왕국인 스페인을 일주한다고 했다
. 인상적인 두 분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성당을 나왔다
.

오늘의 목적지 포블라시온 마을이 6km 남은 지점에서 길은 팔렌시아 지방의 곡창 지대이며
순례자들을 위한 카미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프로미스타
(Fromista) 로 이어졌다. 로마 시대
식민지 시절 이곳에서 재배된 밀과 야채를 로마로 수송했던 오래된 운하를 지나면서
18세기에
만들어진 카스티야 운하
(El Canal de Castilla) 가 계속 이어졌다. 운하의 길이는 200km이며 전에는
곡물을 운반하고 방아를 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 지금은 관개로만 사용되고 있었다. 검푸른
버드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물길을 따라 두 시간쯤 걸어
, 짧은 나무 다리로 운하를 건넜다. 도시로
들어서는데 입구에 물레방아가 돌고 있었고 강변 앞 벤치에는 여러 나라 관광객들이 앉아
있었다
.

11세기에 지은 프로미스타 마을의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인 단아한 산 마르틴 (Iglesia de San
Martin)
성당이 보였다. 이 마을은 로마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상이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 이곳은 지금까지 스페인에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로마길이 있다는 곳이었다.

고속도로를 건너는 다리 입구에 순례자를 위한 조각품이 있었다. 철판에 새겨진 별들의 뜻을
헤아리며 너무나 어울리지도 않게
, 따끈한 밥에 김치찌개를 먹을 수는 없을까, 배낭 안에 과자가
조금 있는데 귀찮아도 꺼내 먹을까
, 허기가 져 먹을 궁리만 하고 가다가 오늘의 목적지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
(Poblacion de Campos) 를 지나쳤다. 할 수 없이 찻길을 사이에 두고 뻗어있는
흙과 자갈이섞여있는길로들어섰다
.오로지앞으로나아갈수밖에없는,먼지가풀풀나는길을
따라 한 시간 반쯤을 걸어 온몸이 파김치가 되어 도착한 곳은 레벤가
(Revenga) 이었으나
알베르게가 없었다
. 다음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로 가자면 앞으로 3km이고, 포블라시온 마을로
되돌아가자면
2km이다. 몸도 마음도 최악의 상태여서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거의
일직선으로 난 자갈길을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비야르멘떼로 데 캄포스
(Villamentero de
Campos)
에 도달했다. 이곳에는 사설 알베르게가 있었다.

거의 오후 6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스페인 자전거 순례자들이 예약을 하여 자리가 없었다.
점심도 허술하게 먹은 지금, 헛구역질이 나며 쓰러질 것 같았다. 머릿속은 생각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처럼 텅 비어있었다
. 다음알베르게까지가자면4km를더가야한다고했다.할수없이차를

가지고 영업을 하는 동네 사람에게 부탁해서 애초의 목적지인 포블라시온 알베르게로
되돌아갔다
.

여기 알베르게도 위층 침대 하나만 남아 있었다. 도착한 내 모습을 본 젊은 사람이 고맙게
아래층 자기 침대를 양보해주었다
. 그리고 나를 기다렸다는 반가운 얼굴들을 보니 가까운 거리를
25유로나 달라던 스페인 운전기사 아저씨의 상업적인 얼굴이 뇌리에서 사라졌다. 최악의
상태까지 몰고 간 몸을 샤워로 어느 정도 달래고 저녁
8시에 문을 여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테레사, 마리아, 캐나다 여자 우연히 다시 만난 음악생도들인 폴란드 청년들과 한 테이블에
앉았다
. 메뉴 델 디아와 스페인의 토속주인 로제 와인으로 서로의 경험담을 이야기 하며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다
. 오늘의 정식인 메뉴 델 디아의 세 코스 중 애피타이저로 나오는 따끈한 콩
수프로 피곤이 서서히 풀려가고 있었다
.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또 다른 알베르게 마당에서는 카미노를 걷고 있는 한국 학생들의
민속 공연이 있었다
. 순례자들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부모와 집을 떠나 오래 힘든
여행을 하는 어린 학생들이 대견하게 보였다
.

모든 사람들이 한발 한발 정직하고 성실하게 인생을 살았다면 인류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개인의 삶은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오늘은 특히 몸을 누일 공간이 있음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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