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아는 12세기 레온 왕국의 알폰소 9세가 발전시킨 도시이다. 이곳의 막달레나 (Magdalena)
수도원은 중세부터 순례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해줌으로써 카미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또한 사리아는 전구간이 아닌 단축 구간 순례를 하는 사람들이 순례를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시간이 없거나 체력이 안 되는 사람들은 이곳부터 산티아고까지 최소 100km를
걸으면 순례 완주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크레덴시알에 스탬프를 받기 위해 들린 안내소에는 크레덴시알을 새로 발급받으려는
순례자들로 북적거렸다. 순서를 기다려 스탬프를 받고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찬 시냇물
가의 노천카페에서 양배추, 감자, 콩, 고기로 만든 ‘칼도 가예고’ (Caldo gallego) 라고 하는 갈리시아
지방의 수프를 한 방울도 안 남기고 다 먹었다. 내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
무엇을 잔뜩 썼는지 메모할 종이가 모자라 사리아 시내를 30분 정도돌아다니다겨우노트한
권을 구입했다. 배낭 밑바닥에 얌전하게 자리잡고 있는 메모한 종이의 부피도 배낭의 무게에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친절한 사람들과 풍성한 느낌인 시내를 벗어나 비스듬한 언덕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교구 성당을 잠시 둘러보았다. 카미노를 걷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100여 개의
돌계단을 올라가니 높은 위치에 카페와 알베르게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시에스타
시간이라 모두 문들이 닫혀 있었다. 시에스타를 만날 때마다 느꼈지만 어쩌면 이렇게 법을
준수하는 것 같이 철저하게 시에스타 시간을 지킬까. 그러나 태양이 작열하는 그늘 한 점 없는
벌판을 걷는 사람과 천고마비의 계절에 카미노를 걷는 사람의 시에스타를 보는 시각과 느낌은
전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를 벗어나서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울창한 오솔길을 지나니 산골 마을들은 양쪽으로 논과
밭 경작지를 따라 야트막한 돌담을 끝도 없이 쌓아 놓았다. 스페인의 작은 만리장성을 보는 것
같았다. 언덕에서 쏟아지는 폭우를 막기 위한 것 같다며 사리아 도시에서 만난 한국인이 설명해
주었다. 인천에서 대학생 대자와 같이 이곳에 온 바오로님이었다.
오늘의 목적지 페레이오스 (Ferreios) 가 10km 남았다는 사인이 보였다. 잠시 후 산티아고가
100km 남았다는 표지석이 나타났다. 여기까지 무사히 도착한 감동으로 새긴 이름들과 문구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나도 감회의 기념 사진을 찍었다. 어느새 400km를 걸었다. 그동안 한 번도
사고나 천재지변을 생각 해 본 적도 없이 완주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갖고 걸었다.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끌어당기는 것 같은 카미노를….
아침에는 산골 마을의 지붕에 하얗게 서리가 내렸었는데 오후가 되면서 한 여름날씨로
바뀌었다. 이 더운 날씨에 두꺼운 잠바를 입고 오르막 내리막길을 반복하니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생각하니 레온에서 산 이 검은잠바는밤이나낮이나자나깨나입고있는나의분신같은
옷이었다.
그동안 가끔 나타나는 마을의 작은 바에 들려 요구르트나 생 오렌지 주스, 바나나 등으로
영양을 보충하며 체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간식이 떨어져 물로만 배를 채운 지금은 먹은 것이
별로 없어서인지 머리가 어지럽고 무력감이 밀려왔다. 한발 한발이 무거워지고 체력이 바닥으로
내려갈 때쯤 목적지 페레이오스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하였다. 카미노에서 열악하고 협소하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알베르게였다. 그래도 지치고 힘든 몸을 눕힐 수가 있는 공간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의정부에서 온 젊은 남자, 인천에서 온 바오로님과 대자, 바스크 지방에서 온 젊은 두 아가씨,
스위스 여자와 나, 모두 함께 저녁 식사를 하였다. ‘메뉴 델 디아’ 세 코스중본요리인고기맛은
기름투성이에 질기고 맛이 없었는데 후식으로 나온 과일 케이크가 마지막 입맛을 깔끔하게
해주었다. 식당 TV에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한창이었다. 순례길, 그것도 스페인 머나먼 북부
산골짜기에서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또한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에서 온 두 아가씨들이
환호하며 따라 하는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오랜만에 맑은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았다.
2012년 10월 29일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
FERREIROS → VENTAS DE NARON 23KM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내 옆 침대의 한 순례자가 비닐 봉지에 따로따로 정리한
물건들을 커다란 크기의 배낭에 넣다 뺏다 하며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건들의 무게로
배낭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정이 2~3일 밖에안남은터라배낭의
부피가 많이 줄어들만 한데 아직도 무게가 만만치가 않은 것 같았다.
많은 순례자들이 처음에는 등에 진 배낭이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소지품들을 하나씩 버리다가,
나중에는 물건들에 대한 미련이 점점 줄어들어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서로 나누어 주고 나면
순례길의 후반에는 등에 딱 붙어 있는 배낭이 몸의 한 부분인 것처럼 적응을 하고 있었다.
고요한 새벽 정적 속에서 유난히 크게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몇 명의 순례자들이 기척을
내며 부스스 일어났다. 나는 알베르게 밖으로 나와 싸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심호흡을 해
보았다. 새 아침을 내 안으로 끌어 들이듯 다시 한 번 숨을 깊게 들이 쉬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산 저 너머에 어느새 찼는지 거의 보름달만한 커다란 달이 아직 떠 있었다. 동트기 전에
달을 본 기억이 별로 없었는데 카미노에서의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주는 새벽이었다. 새벽 6시쯤
배낭을 꾸리던 그 순례자는 이제야 만족한 듯 배낭을 한 번 추스르고 아직도 어둑어둑한 길을
손전등으로 앞을 밝히며 떠나갔다. 아침 8시쯤 한국에서 온 대부, 대자와 스위스인 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