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31일
한 발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
MELIDE → O PEDROUZO 33KM
새벽 6시쯤 깨어 그대로 좀 누워 있는 동안 준비가 끝난 순례자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나도
서서히 준비하며 어제 슈퍼에서 산 바나나와 도넛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7시쯤 앤과 알베르게를
나왔다. 멜리데 도시를 벗어나서 숲길로 들어섰다. 축축하게 젖은 나뭇잎들과 높고 곧게 뻗은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나는 은은한 향내가 상쾌하여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무런 꾸밈도 욕심도 없다. 바깥에서 오는 시선도 소리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코 끝에
닿는 나무 향기에 기분이 좋아지며 모든 생각이 내면으로 향한다. 시끌벅적한 세상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차분하고 단순한 마음이 되어 걷는 순례의 길에서 평범한 진리를 깨우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 천국도 내 안에 있는 것이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옛
순례자들의 영혼이 깃든 이 카미노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엇을 흠뻑
손에 쥔 것 같은 행복감으로 다가왔다.
넝쿨 식물들과 고목들로 우거진 숲 속길의 비스듬한 언덕길을 오르고 내린 후에 평지로만
이어진 카스타네다 (Castaneda) 를 지났다. 다시 오랜 세월의 이끼로 뒤덮인 돌담길을 지나 경사진
산속의 오르막길을 올라가 소젖 치즈의 마을로 유명한 제법 큰 아르주아 (Arzua) 로 들어섰다.
알베르게를 떠나 다섯 시간 정도 걸었는데도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레스토랑에 먼저 도착한 앤과 몇 순례자들과 함께 점심으로 또르띠야를 먹고 유명한
아르주아우요아라는 치즈를 맛보았지만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공원과 마을을 벗어나는 곳곳에 카미노의 상징물과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산티아고까지 42km
남았다.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입성할 수 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숲길과 경사진 내리막 흙길로
이어졌다. 일하기 싫은 듯 꾀를 부리려는 소들을 울타리 안으로 몰고 가는 건강한 여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자주 보아 왔던 주변의 물체들이 새로운 시각의 감동으로 새롭게 다가 왔다.
오늘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어둠이 내릴 때까지 걷고 싶었다. 다행히 지도에는 마을마다
알베르게가 있다는 표시가 있었다. 체중이 줄었는지 흘러내리는 바지를 허리끈으로 바짝 조였다.
며칠 후면 나를 걱정하며 기다려주는 소중한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갈 집이 있어
길을 떠난다는 말을 생각하며 걸어갔다.
다시 평지로만 이어진 마을들을 거쳐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30km 남았다는 표지석을 지났다.
거리를 표시한 이정표가 자주 나타났다. 산티아고까지 점점 짧아지는 거리를 확인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설레었다. 길이 살아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살쎄다 (Salceda) 를 지나며 우리 집 마당에서도 자라고 있는 사철 푸른 유카 식물들을 보니
갑자기 집이 그리워졌다. 지금쯤 마당에는 노랗고 붉은 단풍들로 덮여 있겠지.
다시 평원들을 지나 산타 이레네 (Santa Irene) 에 도착하니 오후 4시 40분이었다. 오늘 아침
멜리데 마을을 떠나 여기까지 29km를 걸었는데도 별로 몸에 무리한 신호가 없었다. 다른 날
이맘때쯤이면 녹초가 되어 알베르게만을 찾아 헤매었는데 오늘은 신기할 정도로 더 걸을 수 있는
체력이 남아 있었다. 이곳에 머물러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서 산티아고에 한 발이라도 더 가까운
곳까지 가고 싶었다.
카페에 들려 요구르트와 오렌지로 에너지를 보충한 후 이제는 등에 붙어 있어야 몸의 균형이
잡히는 배낭을 들러 메었다.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는 서쪽으로, 4km 떨어진 오
페드로소 (O Pedrouzo) 를 향해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넓은 도로변 입구에 네온사인으로 알베르게
2012년 11월 1일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서서
O PEDROUZO → SANTIAGO DE COMPOSTELA 20KM
순례의 길에서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비가 또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앞으로 산티아고까지
20km 남았다. 오늘은 산티아고에 입성하는 날이었다. 돌돌 말아놓은 비옷을 들러 쓰고 스페인
부부와 앤과 한국인 대부, 대자와 함께 어두운 길을 나섰다.
우리는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모두가 순례자’라는 동지 의식과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고
카미노를 완주한다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에게 여유로운 미소를 보내며 폭우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줄지어서 숲을 이룬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풍기는 향내를 맡으며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걸었다. 빗물이 얼굴에서 흘러내리며 전신을 적시고 있었다. 이제는 몸이 심한
온도변화와 다양한 날씨에 다져져서 완전히 적응이 된 것 같았다. 크고 작은 수많은 십자가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야고보 대성당으로 가는 길을 이끌어 주었다.
세 시간쯤 걸어 라바콜라 (Labaco lla) 에 도착하였다. 중세 순례자들은 이 마을의 개울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산티아고로 들어 갔다는 곳이었다. 갈리시아 방송국과 에스파냐 방송국을 지나고
아스팔트 언덕길을 올라가 몬테 도 고조 (Monte do Gozo) 에 있는 기쁨의 언덕으로 올라 갔다. 이
언덕에서 산티아고까지는 4.5km. 맑은 날이면 대성당 탑이 보인다는데 지금은 잔뜩 흐리고 비가
내려 볼 수 없었다. 이곳에는 1993년에 세워진 상징적인 기념비가 있었다. 기념비에는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콤포스텔라 방문을 기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벽화와 1989년
이곳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주최했던 세계 청년 대회의 행사 조형물들이 새겨져 있었다. 중세
순례자들은 이 언덕에 올라 그들 중 가장 먼저 대성당을 본 사람을 순례자의 왕으로 삼았다고
한다. 또한 이 기쁨의 언덕에 이르러서야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을 바라보며 순례의 끝에
이르렀음을 기뻐하였다고 한다.
오후 2시 10분. 나는 드디어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서 있었다.
수세기에 걸쳐 수백만 순례자들의 발길이 지나갔던 순례의 길이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500km를 하루도 쉬지 않고 두발로 여기까지 걸어온 자신을 대견해 하며 얼마 동안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무나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빗 줄기가 뿌리는 오후, 성당 앞
오브라도이로 (Plaza do Obradoiro) 광장에서 바라본 대성당은 거룩하고 장엄하였다. 이번
순례길에서 지나왔던 마을, 여기서 100km가 넘는 트리아카스텔라에서부터 순례자들이 하나하나
돌을 날라 대성당 건축에 쓰여졌다고 하니…. 나는 대성당으로 들어가 여기까지 무사히 이끌어
주신 거대한 분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나왔다. 그리고 성당 오른편에 있는 중세의 순례자 숙소를
개조해서 만든 파라도르 (Parador) 호텔에 배낭을 풀었다. 역사적인 곳에서 묵고 싶었고 또 힘들게
도착했다는 기쁨과 안도감도 맛보며 자축하고 싶었다. 예약을 해야 하는 곳이었지만 다행히 싱글
룸이 하나 남아 있었다.
옛날 왕립 병원이기도 했으며 산티아고에서 가장 상징적인 유적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
호텔의 실내에는 많은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예로부터 순례자들에게 매일 선착순으로 열
명에게 무료로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제공을 하는 관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중세의
순례자들이 도착해서 심한 병으로 인한 출혈을 막기 위해 사용되었다던 거머리가 호텔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여 여기저기 물어봤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시에스타가 끝나고 오후 4시에 문을 연 순례자협회 사무실을 찾아갔다. 차례를 기다려
스탬프가 빽빽이 찍힌 크레덴시알을 직원한테 내밀며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의 길을 걸었다는
완주 증명서를 받았다. 낯이 익은 얼굴들과 서로를 포옹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고행을 자처하며
힘든 순례의 길을 마친 이 순간,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상대의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한국인 네 분과 함께 찾아 들어간 식당에는 여러 테이블에서 외국 순례자들과 함께 한국
젊은이들의 행복한 모습이 보였다. 서로 인사하며 경험담, 고생담 등을 끝도 없이 주고 받았다.
우리는 무사히 완주했음을 축하하며 건배를 하고 맛있는 문어요리와 함께 정말 즐겁게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를 끝낸 후 저녁 6시 미사에 참례하려고 다시 대성당으로 향하였다. 새벽부터
오는 비가 아직도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오브라도이로 광장에서 정문 입구로 들어가면 영광의 문 (Portico de la Gloria) 이 있다. 스페인의
장인 마테오 (Mateo) 가 1168년부터 20년에 걸쳐 지은 로마네스크의 최고 걸작품이다. 요한
묵시록을 근거로 조각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12사도와 천사들의 조각상 등 200여 개의 상이
있고, 성당 내부로 통하는 세 개의 문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문을 통과하면 문 중앙의 기둥에
지팡이를 짚고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성인 야고보상이 있다. 순례자들은 기둥이나 야고보상에
손을 얹고 순례의 길이 끝났음을 알렸다고 한다. 지금은 공사 중이라 줄로 막아놓아서 만질 수가
없었는데 오랜 세월에 걸친 수많은 사람들의 손자국으로 많은 부분들이 닳아 있었다. 대성당의
중앙 성단에는 성인 야고보의 좌상이 있으며 천장에는 대향로 ‘보타푸메이로 (Botafumeiro)’ 가 달려
있다.
미사 시작 전 수녀님이 청아한 목소리로 산타 마리아를 부를 때는 모두가 함께 따라 불렀다.
이어서 은은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들리며 저녁 6시 미사가 시작되었다. 마음이 설레며
감격스러웠다. 신부님 네 분이 집전하시는 미사를 나는 한국말로 비슷하게 따라 하였다. 이
거룩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마음은 그저 감사하고 영광스러울 뿐이었다. 이어서 성체를
모시는 순간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완주할 수 있다고 자신을 갖고 시작했지만 떠날 때부터
지금까지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걱정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미사가 끝난 후 1000여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 순례자들의 의식대로 중앙 제단 옆의 계단을
올라가 금색으로 조각된 야고보 상에 손을 얹고 순례의 길이 끝났음을 알리는 입맞춤을 하며 두
손으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좁은 계단을 내려가 스페인의 수호성인 야고보 성인의 유골함이
안치된 중앙 제단 지하로 내려갔다. 순례자들과 신자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차례가 오면 제단 앞 의자에 무릎을 끓고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기도 드리는 것 같았다.
나도 한참을 기다려 야고보 성인의 유골함 앞에 무릎을 꿇으며 무한한 감사 기도를 드렸다. 지난
며칠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식구들과 주위 사람들의 삶에 빛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촛불 봉헌을 하고 대성당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