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일
특별 정오 미사
SANTIAGO DE COMPOSTELA
여전히 부슬비가 내렸지만 평온한 아침의 오브라도이로 광장에서 바라본 대성당은 역시
장엄하고 아름답다. 파사드 (Facade) 건물의 전면은 페르난도 데 카사스 이 노보아 (Fernando Casas
y Novoa) 가 1750년에 완성한 것으로 양쪽에는 똑같이 생긴 바로크 양식의 탑 두 개가 대성당을
받치고 있다. 두 탑의 높이는 각각 70m이다. 대성당의 후면에는 면죄의 문이라고 불리는 문이
있고 성당의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사방 20km까지 들린다고 한다.
오브라도이로 광장을 중심으로 중세에는 가난한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되었던 산 헤르몬
수도원, 박물관, 궁전, 작은 성당들 구시가지 전체가 198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과거 유대인이 살았던 거리와 세르반테스 광장 (Plaza de Cervantes) 을 돌아보았다. 광장에는
돈키호테의 작가인 세르반테스의 흉상이 분수대 중앙기둥에 자리잡고 있다. 12세기까지 정부
공문을 읽었던 장소라고 한다. 각종 양식이 혼합된 건물들, 조각들, 거리를 조성하고 있는 돌들
하나하나에 옛 전통이 서려있어 구시대로 돌아간 듯 하다.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중세
시대의 거리이다.
매일 정오에 시작되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부지런히 다시 대성당으로 향했다.
불이 환하게 대성당 제대를 밝히고 있었고 한쪽에서 수사님이 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곧이어
신부님 두 분이 집전하시는 미사가 시작 되었다. 신부님이 미사 중간에 산티아고 목적지에
도착한 순례자들 국적과 순례자 수를 언급하시며 축복하는 것 같았다. 옆에 앉은 순례자가 말해
주어 귀를 기울이고 있어서 “꼬레아”라는 단어는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순간나도한국인중한
순례자라고 좋아하다가 미국 국적임을 잠깐 잊어버린 걸 알고 웃음이 나왔다. 국적은 미국이라도
난 분명한 한국인이었다.
성당을 나와 앤과 오브라도이로 광장에서 출발하는 Tour Train을 타고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45분에 6유로였다. 저녁 6시에 있는 유명한 대향로 의식을 보기
위해 다시 대성당으로 들어왔다. 700여 년 전통을 가진 종교의식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만 행해지는 ‘보타푸메이로 (Botafumeiro)’ 대향로 의식이 시작되었다.
높이가 1.6m, 무게가 80kg의 대형 향로 안에 40kg 정도의 석탄과 향을 넣고 여덟 명의 수사가
밧줄을 잡아 당기면 향로는 중앙 제단에서 가운데의 통로를 통해 그네처럼 왔다 갔다 했다. 왕복
거리가 65m이며 높이가 최고 21m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연기와 향까지 내뿜으면서
신비스러움을 더해 주었다. 옛날에는 순례자들이 도착하여 이 성당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악취가
풍기고 전염병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11세기경부터 향을 피웠다고 한다.
의식이 끝나고 다시 성당 제대 뒤의 야고보상과 지하 제단에 있는 야고보의 유골을 모신 관
앞에서 100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순례자의 의식을 가지며 깊은 경의를 표했다.
크나큰 감회와 아쉬움으로 다시 한 번 내부를 천천히 돌아 대성당을 나왔다.
며칠을 함께하고 정오 미사와 대향로 의식에 같이 참여한 앤은 산티아고에서 스위스로 가는
밤기차를 타고 돌아간다고 하여 이 메일 주소를 주고 받으며 아쉽게 작별하였다.
갈리시아도 문어 (Pulpo, 뽈보) 요리가 유명했다. 한국인 네 분과 저녁으로 문어요리를 먹으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식당이 어디냐고 물으니 어느 노신사가 친절하게 문어 전문 식당 앞까지
안내해 주었다. 식당 입구에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문어를 통째로 삶고 있었다. 감자도 같이 삶는
것 같았다. 큰 집게로 삶은 문어 한 마리를 들어올려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서 나무 접시에 담아
굵은 소금과 고춧가루를 뿌리더니 올리브 오일도 조금 뿌려서 식탁에 내 놓았다. 붉은 포도주는
하얀 사발에 얼마든지 마실 수 있었다. 역시 문어요리는 한국 사람들의 기호식품이었다. 순례를
마치며 산티아고에서 마지막 저녁을 같이 하게 된 인연을 자축한다며 우리는 즐겁게 마시며
웃었다.
2012년 11월 3일
순례의 길은 끝나지 않았다
SANTIAGO DE COMPOSTELA → FINISTERRE 90KM
박물관과 성당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성당 박물관에는 옛 성인들의 발자취와 스페인의
수호 성인 야고보의 조각들, 천 년 전의 원본 성서들, 어느 성서는 너무 오래 되어서 글씨도 안
보일 정도였고 그림들로 된 성서도 보관 되어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 오브라도이로 광장 가운데 서서 다시 한번 산티아고 대성당을 바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순례자들이 고행을 자처하며 순례의 끝인 이곳으로 걸어 왔다. 지금도 한발 한발
목적지로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순례길은 끝났지만 우리는 이곳이 끝이
아닌 예전의 일상생활로 돌아가 다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인생 순례의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 순례길에서 가졌던 성취감, 만족감, 기쁨, 슬픔, 아픔, 공허감, 서운함이 수시로 반복될
나날인 인생길을….
바오로님과 대자, 그리고 유치원을 운영한다는 자매와 순례자 협회 사무실에서 만나
피니스테레까지 같이 가기로 하였다. 산티아고 버스터미널에서 왕복 23.60유로를 주고 오후 3시
20분에 탄 버스는 2시간 40분만에 피니스테레 작은 어촌에 도착했다.
지구가 네모나다고 생각했던 시절, 대서양 너머는 절벽이라고 믿었던 때, 옛날 로마인들이
지구의 끝이라고 믿었던 곳이 피니스테레 (Finisterre) 이다. 피니스테레는 산티아고에서 90km
떨어진 곳에 있는 대서양 해변의 작은 어촌이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산티아고에서 순례를
마치지만 더러는 피니스테레까지 가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나는데 걷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버스를 타고 간다
어촌 부둣가의 비릿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진동했다. 걷지 않은 순례자는 알베르게에 묵을 수
없다고 하여 스탬프만 받고 바닷가가 보이는 2층 호스텔로 들어갔다. 해가 떨어지며 주황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바닷가의 아름다운 전망이 그림같이 펼쳐졌다.
지금 나의 생도 저렇게 발갛게 물들어 있을 것 같았다. 맑은 하늘보다는 구름이 있을때노을은
더 아름답다. 지난 며칠 동안 난어린아이가되어설레기도하고그림속의주인공이되기도하고
사진작가가 되어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에 담아보기도 하고 어떤 땐 시인이 되었다가 어느 날은
철학자가 되기도 했다. 또 들판의 나무처럼 하염없이 비를 맞기도 하고 나그네가 되어 바람처럼
자연과 함께 끊임없이 걸었다. 인생의 축소판 같은 길에서 밤새 추위에 떨기도 하고 또 따뜻한
봄날처럼 꽃길을 걷기도 했다. 내 나이엔 큰 도전이었지만 큰 깨달음이 아니어도 좋다. 나는 이
길에서 인생을 생각해 보았고 앞으로는 살아가면서늘이길을생각할것이다.끝날것같지않은
아픔도 끝이있고두려움에떨던밤이지나면햇빛따스한아침이있던길을.이길을걸으며나는
나만의 구름을 만들어 해가 지기 전의 내 인생의 시간을 가장 아름답게 물들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