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4일
세상의 끝을 향하여, 세상의 끝에서
FINISTERRE → SANTIAGO DE COMPOSTELA 3KM
아침 8시쯤 피니스테레 마을의 끝을 향하여 출발했다.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였다. 해안
도로를 따라가다 대서양을 왼쪽으로 끼고 계속 아스팔트길로 올라갔다. 얼마쯤 걸어가자 바다를
등지고 야고보상이 서 있었다. 여기서 피니스테레의 등대까지는 3km.
한 시간쯤 걸어가니 드디어 옛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던 피니스테레의 등대가 보였다.
이 땅 끝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일몰 시간에 이곳에 오기 때문인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하얀 등대가 서 있는 절벽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대서양 수평선은 끝없이
아득하고 절벽에는 가끔씩 검푸른 파도만 일렁거렸다. 바위 위에 구리로 만든 순례자의 상징인
신발 동상이 놓여 있었다. 절벽 끝에는 십자가가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리스도가 2000년 동안 인류에게 선물한 이 거룩한 십자가 앞에 머리 숙여 돌을 올려놓았다.
옛 중세기 순례자들이 지구의 끝이라고 믿었던 이 절벽에서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식으로 순례 중에 입었던 옷과 신발을 태웠다고 하는데 십자가 앞에는 순례자들이 소지품 등을
태운 그을음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고 타다 남은 잔재들이 있었다.
망망대해만 보이는 절벽 끝의 바위 위에 서 보았다. 고요 속에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순례자 의식대로 신고 있던 양말을 벗어 태우려고 준비해 간 라이터를 켜는데
바람이 불어쉽지가않았다.별문제없이순례의길을마치게해주고이지구의끝까지함께하여
나의 발을 감싸 준 고마운 양말이 마지막 순간까지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십자가 앞에 다시한번돌을올려놓으며생각에잠겼다.체력,마음,생각의한계를
느끼게 해 준 긴 여정의 지나온 순간들이 절벽 아래 부딪치는 파도와 더불어 들어왔다 나갔다
반복하며 머릿속을 스쳐갔다.
멀리서 밀려오는 시커먼 구름과 점점 거세게 부딪치는 파도가 신비스럽게 묘한 조화를 이루는
대서양을 바라보며 다시 바위 끝에 앉았다.
초입에 세워진 거리를 나타내는 카미노 표지석에는 0,00km라 쓰여 있다. 세상의 끝인 종착점에
왔으니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뜻인가? 끝과 시작은 같은 것인가? 나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여 이곳 땅 끝까지 왔다는 흔적을 남기고 돌아감에 만족하기로 했다.
부둣가 식당에서 해산물 볶음밥 같은 빠예야를 점심으로 하고 오후 4시 50분에 다시
산티아고행 버스에 올랐다. 저녁 8시쯤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와 대성당 후문 옆에 옛 수도원을
개조해서 만든 알베르게의 독방으로 들어갔다.
2012년 11월 5일
소중했던 시간, 순례를 마치며
마지막 날. Santiago를 떠나며
새벽 세 시에 잠이 깨어 3시 4시 5시 6시 시간마다 울리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종소리를 들으며 메모를 정리하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아침 여섯 시 반에 대기 중인
콤포스텔라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 앉으니 눈물이 나왔다.
지독한 몸살 감기에도 하루도 낙오 없이 이 길을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모든 만물
안에 존재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하게 해 주심에 감사를 드린다.
또한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를 해서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순례의 길에 동행해준 남편의
사랑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며 번갈아 가며 전화를 해서 힘을 실어준 딸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그동안 짧은 인연이었지만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또한
용감하게 순례길을 걸어준 나에게도 감사한다.
불빛이 비치는 콤포스텔라 공항이 점점 시야에 들어왔다.